추억의 힐링 명작 이미테이션, 임진왜란 1592 최수종, 날아올라라 나비, 나의 별에게 줄거리 재밌는 평일 금요일 레전드 드라마 추천 >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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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힐링 명작 이미테이션, 임진왜란 1592 최수종, 날아올라라 나비, 나의 별에게 줄거리 재밌는 평일 금요일 레전드 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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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rene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04-2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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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조양준연출 조양준출연 박정원 이윤재 김서현 이경빈 황중성 김현태​​동아대학교 극예술연구회 81회 정기공연 ;​극회 후배의 창작극이자 연출작인데 처음부터 걱정이 많았다. 공연인원 모집을 시작하며 단톡에 올려둔 초고 느낌의 대본은 덜다듬어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엉망이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플롯도 이후 유행하는 서바이벌 장르에 편승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내게 피드백을 요청했을 때 도저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이 안잡혀서 한참 주저하고 있다가 한글 파일로 2페이지 가득 채워서 보내주었지만...결국 큰 틀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대본이 완성됐다. 그 뒤로도 자잘한 수정이 있었는지 연습일지에 적힌 글들을 보면 배우가 새로 대사를 외워야 하는 상황이 종종 보였는데, 내가 봤을 땐 도무지 어디를 수정했는지 알 수 없었다......교주 - 엄마 - 변호사 - 교수시놉시스낯선 방에 갇힌 네 명의 인간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게임을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을 흉내내는 인공지능을 찾아내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는 것.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른다. 차츰 인간들의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고 누가 인공지능인지 추측할 수 없게 되며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간들은 인공지능이 누구인지 밝혀내 살아서 탈출할 수 있을까? 또, 이 게임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인가?무대가 단촐했다. 텅 빈 실험실의 느낌을 내려고 그랬는지 상징물을 제외한 여타 소품이나 대도구 등을 일체 배치하지 않았는데 그게 성의가 없어보였다. LED 조명으로 쨍한 화이트를 계속 쏘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바닥의 흔적들과 무대의 뒷판이 너무 잘 보였고 그게 실험실이라기보다 블랙박스형 무대로 밖에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바닥과 뒤에 시트지를 붙이든 아니면 단을 만들어서 그 위를 실험실로 설정했다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피실험자들의 공포가 더 잘 와닿지 않았을까? ​게다가 각 인물을 상징하는 상징물의 퀄리티가 들쭉날쭉했다. 특히 교수의 예술성을 상징하는 '조각칼을 든 팔'은 팔모양의 철사를 만들고 그 위에 점토를 붙인 것인데 점토가 떨어져보이는 곳도 존재하고 덕지덕지 붙어있어 그닥 예술을 상징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나 교수는 인체의 완벽성 - 온전성에서 미를 느끼는 캐릭터인데 조금 더 신경을 써야했다. 변호사의 상징물인 니케 석상과 같은 재질로 모든 상징물을 만들었다면 무대 구성적으로 더 통일감이 생기고 미학적으로 지금보다는 더 괜찮았을 것 같다.​조명 또한 아쉬웠다. LED 조명이 대다수라 아날로그 조명보다 색을 사용하기 쉬웠을 텐데 위기 상황일 때는 빨간색, 아닐 때는 그냥 흰 조명이 거의 대부분이라 아쉽아쉽고, 특히나! 처음에 경보가 울리고 실험실임을 보여주기 위해 화이트를 빡 틀고 난 뒤 그 조명으로 계속 가게 됐는데, 화이트로 무대 전체를 비추니까 시선이 분산되고 눈이 피로해졌다. 처음에만 빡 틀고 그 뒤에는 조도를 조금 조절하거나 색을 화이트 말고 자연색으로 조정했다면 좋았겠다. 희곡 자체가 한 명 얘기하고 들어가서 비난 받고의 반복이다 보니 조명 디자인도 대부분 비슷비슷한 느낌이었다. 유일하게 변호사 분위기 전환 때가 조명에 연출이 들어갔다고 느껴질 정도. 그 장면은 나쁘지 않았다.​음향은...그저 뭐 그랬다. 사용된 음향이 나쁘지도 좋지도...그렇지만 이게 최선이었나 싶은...극회 연극을 보고 난 뒤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내 주변 몇몇의 말을 빌리자면... 극회 특성상 기술적이고 이론적인 배우 훈련이 동반되지 못하고 만약 그렇더라도 오랜 기간 훈련하지 못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초적인 탈렌트로나마 노력했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나도 안다. 당연히 극회에서의 배우들은 연기를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배우의 기본적인 테크닉에 대해서 연출들이 당연히 지도를 할 것이고, 그걸 제대로 따르지 못한 배우는 ... 연기력에 대해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됐건 연극은 배우 예술이기 때문에.​이번 극에서 배우들은 서로가 없었다. 희곡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배우들은 서로에 대한 반응과 사이가 부족했고, 자신의 과한 액팅을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 부족한 점은 신체와 호흡이었다. 배우들의 제스쳐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비슷했고 배우 자신이 긴장을 한듯 옷매무새를 만지는 등의 습관도 존재했다. 무대를 걸어나올 때 등의 동작도 그 움직임의 목적과 생각이 드러나지 않고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호흡도 마찬가지로 긴장을 풀어주고, 긴장을 쪼아주는 등의 효과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으며 대사 사이마다 호흡을 달리해 생각을 달리 보여주지도 못했다. 대사별로 서브텍스트는 제대로 작성을 하고 공유했는지, 스타니슬랍스키의 비트와 유닛으로 나누어 행동 동사는 적어보았는지 의심되었다. (아마 분명 하지 않았을 것이다.)​극회 공연의 문제중 대다수는 연출 문제겠지만, 배우의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배우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확인하고 발전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게 단순히 대사를 외우고 큰 소리로 내뱉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로 존재하는 인물을 현실로 끌어내어 자신에게 체화시키려 해야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인물과 관련된 실제 사례 등을 취재, 조사, 연구하고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해야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 - 자유로운 신체, 부드러운 발성,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기승전결의 감정 - 을 연출에게 여러가지 방향으로 제시하고 그 중 최선의 안으로 연기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상술한대로 극회 내의 배우가 이 모든 것을 해내리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자신이 배우로서 욕심이 있고 정기공연에 참여했다면 그리고 좋은 공연을 해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자신의 욕심에 맞게 정보를 찾아보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했다. 연출은 작가를 존중해야한다. 텍스트로 존재하는 희곡에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히 있고, 연출은 그것을 찾아내어 그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극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극회 내에서 창작극을 올린다면 작가의 역량이 당연히 당연히 낮기 때문에 희곡의 퀄리티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구릴 가능성이 높다. 내가 판단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희곡으로서의 가치는 ... 후배에게 미안하지만 꽤 낮다. ​여러가지 요인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인물의 깊이가 없다는 점이다. 각 인물은 신앙, 예술, 모성, 변호(책임)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려한다. 그러나 각 인물은 각자의 영역과 반대 혹은 뒤틀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각자의 이야기가 끝나면 타인들이 그를 비난한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왜 깊이가 없냐​문학 작품 등장인물의 지능은 작가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 경험과 지혜와 감성도 마찬가지. 신앙 예술 책임 모성은 모두 인간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오랜 연구와 공부 끝에 점점 첨예하게 분석되고 있다. 이 중 단 하나를 다루는데만 해도 오랜 취재와 자문과 공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절대 피상적으로 접근해서 단순하게 적어낼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희곡에선 너무나 겉핥고 있다. ​스테레오 타입의 개독 범죄. 미술교수가 제자를 성폭행하는 내용. 변호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채 말꼬리 잡기 식으로 정의를 끌어내리는 내용. (길게 썼다가 줄입니다.)​특히나 가장 심각했던 건 모성이다. 모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쓴 건지. 태어난지 몇개월 되지 않은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다.', 'OO엄마로 불리는 기분이 괴롭다.', '자기도 살고 싶었다.',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라는 등의 대사를 한다. 이 대사들이 나타나려면 엄마의 괴로움이 먼저 보여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엄마가 있다. 아이를 양육하며 온갖 괴로움과 서러움을 감내한 수많은 여성이 있다. 그런 여성들의 앞에서 아이를 죽이는 이유의 연출이 고작 '더 놀고 싶은데 아이가 울어 집에 묶일 수 밖에 없음'인 것에 부끄러웠다. 관객 중에 분명히 엄마들이 존재하는데,,,그들이 화가 날 것 같았다. 자신의 모성이 이렇게 폄하 받은 것에 대해서.​사실 4개의 속성 모두가 그렇다. 짧은 식견으로 깊은 영역을 다룬다. 만약 변호사, 신학자, 미술가와 이 연극을 함께 본다면 똑같이 부끄러웠으리라.​​연출도 묘했다.나는 이런 연극을 정말 오랜만에 본다. 특히나 대학극에선 더더욱. 현시대의 연극 트렌드는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다. 현실과 비슷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사실주의적인 디테일을 첨가하여 관객에게 장면과 상황을 이해시키고 공감시켜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서서히 메세지를 던지는 방식인데...이번 극을 보고 난 후에는 사실주의 사조가 유행하기 전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행동과 목소리가 크고 과장된 그런 연극...도당체 왜 이렇게 연극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희곡도 그렇고 연출도 이렇게 되니 배우에게 몰입하기 힘들었다. 서사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인물의 감정고조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그런데...이번 연극에선 승전승전 밖에 없는 것 같다. 과하거나 혹은 부족하거나. ​연극의 플롯이 이렇더라도...분명히 인물간의 교류와 반응을 통해 좋은 극을 만들 수 있을거란 느낌이 있었다. 인물간의 대화가 부족하다. 진심어린 대화가. 서로 눈을 마주치는 장면도 적다. 도대체 어디를 보고 액팅하는지 알 수 없다. 시선이 방향을 잃으면 대사의 대상도 불명확해진다. 연출은 서로 대화를 시켜야했다. 반응을 끄집어내야했다. 더 나아가 대화로서 인물들의 과거를 풀어야지, 각자가 앞으로 나와서 독백으로 술술 말해버리면 도저히 재미가 없고 인물들의 깊이와 나머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사라진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처럼 대화만으로 충분한 긴장감과 서술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걸 알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극회선배로서 공연 과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사람으로서많이 아쉬워서 연출에게 이런저런 쓴소리를 했다.​연출은 책임을 지는 자리다. 결과가 어떻든 누구에게 어떤 소리를 듣든 결국 공연은 올라갔고 다시 무를 수 없다. 자신이 봤던 공연이 그가 원했던 공연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귀에 나쁜 소식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것에 만족하고 다음을 위해 나아가야한다. 후배에게 좋은 소리를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후배들이 나의 피드백을 원했고, 나는 일부러 거짓말 하는 것을 싫어한다.​정말 어른이란안좋은 공연을 봐도 후배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일까.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지만 가끔 머리를 싸맨다.​2.1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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